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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부목사

구원관 갈등 3 - 성령님의 장탄식

열방 예찬 교회 전도사입니다.

이 글은 원래 사람의 약속대로 완전히 지워야 합니다. 그런데 천사의 약속도 들어서 절충안으로 개인이 드러날 이야기를 다 빼고 씁니다. 사실 다른 것이 아닌, 2017.12.11~12일 사이의 저녁과 새벽에 보고들은 것 때문에, 지금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니다. 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유는, 밤과 새벽 사이에 있던 일들 때문입니다.



사람 / 천사와 약속? 누굴 선택하나?

어떤 분이 자신의 은사가 죽기 전에, 꿈 속에서 천사가 나타나서 미리 알려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리 찾아가서 고기를 사서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분의 이야기가 제게는 1981~2년 사이에 제 아버지의 친척 누나 집에 온 가족이 놀러갔을 때 본 환상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해서 짧은 시간에 빨리 처리하는 것이라, 불확실할 수 있습니다. 여기부터는 제 기억이라, 그분이 하신 말씀과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성령님이 그 분에게 오셨습니다. 희끄무레한 불분명한 사람의 형체로 말씀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평소에 하나님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신 분이라서, 성령이라고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한 영이라고 말하기엔, 다른 사람들이 귀신을 봤다고 이단으로 몰아붙일 수 있어서 그리 말할 수 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 기억에 따르면, 그분의 시각에서는 그 영은 천사의 날개가 없었습니다. 물론 날개없는 천사의 기록도 성경에 적혀 있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내심을 받은 영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쨌든 그 분의 진술에 맞춰주기 위해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불러서 제게 대신 말해주라고 시키셨습니다.


그 천사는 대놓고 천사라고 확신하라고, 아주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날개를 접어도 자기 키의 반 이상 어깨 위에 올라가 있었고, 키가 무척 커서 아파트 같이 컸습니다. 갑주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꼬마 성도여! 당신이 가서 그에게 말씀 좀 전하고 오시오! 회개를 전하고 다니라고!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못하리다!"

막상 그렇게 말해놓고서, 저에게 자꾸 가라고 재촉을 합니다. 그를 바라보니, 그 자신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세상의 삶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눈에는, 어두컴컴한 암흑 속에서 움직였습니다. 마치 3D 안경을 쓰고 뭔가를 하듯이. 그에게 가서 뭔가를 말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받아주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천사가 해 준 말을 듣고 스승에게 찾아갔지만, 결정적인 회개에 대한 강조가 없었습니다. 이 부분은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흘려서 말한 것인지, 스승분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다시 천사가 제게 와서, 제대로 확실하게 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쪼르르 달려가서 얘기를 해드렸더니, 막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도로 천사 앞으로 갔습니다. 제가 물어보려는데, 천사가 말을 가로챘습니다.

"왜? 당신한테 전하라고 시키고, 내가 말을 전해주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지요?"

"예"

"이미 성령 하나님께서 가서 말씀해주셨어요. 그런데 교리에 꽉 잡혀서, 교리만 벗어나면 개신교단에서 생매장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보다 직장과 단체가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그가 성령하나님을 귀신으로 몰아붙여서 성령훼방죄를 지을까봐 자제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어차피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지 않으면, 이 가르침을 대적하면 지옥에 떨어지지요. 그리고 내가 가도 그 사람은 자기 선에서 딱 아니라고 선을 그어버리면, 마귀로 몰아붙이고 딱 자릅니다. 그 뒤의 이야기를 더 해주려고 해도 자신의 의지로 막아버려요! 말씀을 이유로 이미 많이 가로 막혔었습니다.

해주고 싶어도 하나님께서도 그 이상은 요구하시지도 않습니다. 일평생 누적된 일종의 괘씸죄이기도 합니다. 예정선택설에 너무 빠져서 선택받은 자는 어떻게든 선택된다는 틀로 자신과 남들을 옭아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정선택설을 지나치게 신봉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더 안 붙잡습니다. 얼마든지 죄악에 무너지고, 추악함이 드러나고, 버림받은 자들처럼 살게 내버려두십니다."

그 다음에 우리 시대에 목사님들이 성범죄, 경제 범죄, 도박 심지어 마약과 절도, 살인, 아동과 노인 학대에도 손을 대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목사님들의 타락원인이 예정선택설에 지나치게 안주해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시대의 니골라 당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3장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마태복음 11장

12    1)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그래서 육체적, 현실적으로 늘 쉽게 볼 수 있는 당신에게 시키는 일입니다. 하지만 당신도 그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세상에서 생매장 당하기 싫어서 고양이처럼 살짝 가서 살짝 속삭이고 건드리는 정도 밖에 못 할 겁니다."

"아니오!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이 할 때는, 환경이 바뀌고 점점 막히기 시작해서, 어려울 겁니다."

정말로 그 이야기를 들은 뒤에, 환경이 바뀌어서 개인정보와 간증 이야기를 더 이상 쓰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들어왔고, 개인정보가 있는 글들은 지웁니다. 그런데 그 분의 잘못이 아니고, 제가 자꾸 접근해봐야 현실적으로 힘들어집니다. 뒤에 다른 분이 버티고 서있었고, 그 분들이 또 압력을 넣기 때문에, 이 글의 주인공 분은 어쩔 수 없었을 뿐입니다. 뒤에 버틴 다른 분은 친절과 부드러움으로 사람들에게 대해줄 수 있어도, 그 자신이 지킨 그 교리와 신념 때문에 결국에 다 온 몸이 검붉은 근육질의 악마가 머리끄댕이 잡고 지옥으로 끌려 가는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저 또한 웃으면서 피상적으로 상대방을 따뜻하게 대해줄 수는 있지만, 그 것은 당장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할 뿐, 영원한 고통 속에서 그가 제게 할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어? 하나님께서 시키셨다며? 나는 몰랐기 때문에 너를 핍박했을 뿐이야! 그 핍박이 두려워서 말하지 않다니? 너도 지옥으로 내려와야 해! 너는 하나님께서 시키신 대로 하지 않아서, 내가 고통받기 때문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2001년의 삶이 반복 될 뿐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글을 조직사회에 다 보여줬다간, 해당 인이 박스 들고 짐을 정리하고 조직을 떠나는 모습과 저더러도 떠나라고 하기 때문에, 일단 질서를 존중하기 위해서 절제를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절제는 결코 좋은 게 아님을, 이미 다른 제 글에서 죽어간 많은 이들을 통해서 잘 아실 겁니다. 남 모르게 중보기도는 큰 효과가 없습니다. 15년간 경험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래 말씀을 하신 이유가 빈 말이 아닙니다.

로마서 10장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ㅂ)아름답도다 1)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ㅅ)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간증을 위한 집단 이성 조종

다른 분도 있습니다. 그분에게 가까운 분이 장례식이라고 위 스토리와 같은 날에 문자가 연달아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너무 피곤해서 가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스스로 장례식 분위기를 말씀해줄 때는 사태파악이 안됐습니다. 집에 와서 다른 일 하다가 퍼뜩 떠오른 건데, 그 분도 과거 환상의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가까운 가족 구원을 못한 책임이 막중합니다. 머리의 지식이 아니라, 진짜로 상대방에게 삶으로 헌신해서 사람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전도할 때 머리 지식과 사회적 지위로 하는 게 아닙니다. 좋고 윤택한 삶을 산다고 사람들이 그 복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라서 믿지 않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한테 자기 친척 중에 누가 이렇게 대단하다고 자랑만 할 뿐입니다. 

영업사원들처럼 삶과 진심을 보여서 구매자들의 마음을 얻듯이, 시간을 내어서 가족과 유대감을 갖고 함께 기도해서 함께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더 좋은 곳에 살고자 가까운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게 아니라, 자주 볼 수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자주 만나서 자주 예수님을 전하고, 체험한 것을 간증해야 합니다. 간증하고 나면, 불신자들이 말할 겁니다. 

"말로만 자랑하지 말고, 그럼 그 하나님을 내게 보여봐라!"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제점을 듣게 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중보기도와 말씀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성과 논리, 교리로는, 우리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는, 불신자들을 전도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입증할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입증하시도록, 우리 사람은 자리를 내어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간증문을 쓰다가 다른 사람들의 개인정보가 드러나서 문제가 되므로, 간증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글의 주인공에게 간증의 중요성을 연구하고 책으로 내게 하셨습니다. 못 믿겠다면, 그 분이 연구하시는 책에서 간증하라는 구절들을 쓰겠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는 숨기라고 나와있습니다.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ㄱ)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하지만 9장에서는 정반대로 나옵니다.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처음에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입으로 시인하며 돌리지만, 그 다음부터는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실존과 기적을 전파하고, 마침내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제자들을 파송하여 널리 기적을 전파합니다.

제가 간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제 머리에서 나온 게 절대로 아니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인생과 집단 이성과 감정, 환경을 모두 조종해서 이끄심임을 증거했습니다. 한사람이 간증하면, 그 사람 개인의 주관적 견해와 주장, 자기 합리화가 담겨있어서 휘둘립니다. 그러나 여러사람이 내면, 서로 부딪혀서 혼란을 일으키는 군더더기가 떨어져 나가고, 객관적 질서과 강화됩니다.

잠언 27장 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3)빛나게 하느니라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이끄심에 누구든 거부할 수 있습니다. 당장 하나님의 지시는 사람이 얼마든지 거부, 무시, 핍박, 훼방하기 쉬운, 힘 없고 별볼일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께선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 약해보인다고 진짜로 그렇게 하면, 제가 20~30대 20년을 날려먹은 것처럼, 탈탈 다 털립니다.저를 후원해주셨던 분들, 앞날을 열어주시겠다는 분들, 수 많은 기회들, 배우자감들, 조직, 학교, 미래에 함께 일할 곳 등등이 다 사라졌습니다. 아주 작은 불순종들이 누적된 결과입니다.

조만간 지난날의 경험을 쓰고 싶습니다. "그렇게 기도 많이 했고, 그렇게 많이 하나님 만났고, 그렇게 잘 알고, 그렇게 잘났는데, 나는 왜 그렇게 사나?" 라고 제 자신 스스로에게 따지고 싶을 정도로, 많습니다.



장탄식


이상의 글에서는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뺐습니다.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제 뇌리 속 환상 중에, 제 오른 편에 흐릿한 형체의 사람 모습으로 성령님께서 앉아서 길게 탄식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마침 그 때는 거의 광운대행 막차에, 청량리 즈음이라 제가 앉은 자리에는 앉은 사람이 저 밖에 없어서 성령님과 저 단둘이 앉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반박할 사람은, 본인이 영원한 책임을 진다는 전제에서 마음껏 반박하셔도 됩니다. 귀신이나 유령을 봤다고 말하든지. 그 환상 속에서 차분하나 마음을 가득 채우는 힘이 있는 지시를 저는 들었습니다.

"개인 감정과 교리, 신념으로 성령을 멸시한다. ........ 훼방, 무시. 너도 세상과 타협하려느냐?"


그리고 그 12일 새벽 내내 좀비들과 싸우거나, 피해서 도망다니는 꿈을 꿨습니다. 그래서 아침까지 심장이 벌렁 거리고 마음이 상당히 불안하고 공포감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좀비는 영원히 회개할 수 없는 살았으나 죽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런 좀비 영화들이 유행하는 이유또한 이 시대 대다수가 살았으나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삶을 살기 때문임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또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교리에 매몰돼서 성령을 훼방하거나, 다시는 회개불가능한 죄악을 지른 성도와 사역자들이 많아진 시대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한 사람에게 한 번 전하고 끝낼 게 아니라, 영구하게 불특정 다수에게 모두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더 나아가 해당 사람에게도 오래도록 생각할 시간을 갖고 검토해보도록, 글을 올려놓습니다. 그렇게 안하면, 자꾸 여기저기 찾아가라는 환상, 꿈을 받고, 제 삶이 그렇게 질질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해방될 열쇠는, 글을 대중이 볼 수 있도록 올리고 인터넷이나 직접 전도로 어떻게든 널리 전파하는 길 뿐입니다.

그런데 개인정보를 자꾸 말하니까 부작용이 더 커서 감안해서 해보려고 합니다.


이상입니다. 원래 이 전 글의 버전에서 다음 편이 이 글에서 제일 위에 있는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