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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종교 비교

그리스 철학을 베껴서 만든 불교

열방 예찬교회 전도사입니다. 이 번에도 불교가 다른 종교의 교리와 철학 사상을 베낀 글을 쓰겠습니다.




불교를 낳은 헬레니즘


그리스 - 불교


불교는 그리스 철학과 종교를 그대로 다 베껴놨습니다. 그 이유는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서북부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기 때문에, 수 많은 그리스 인들이 인도에서 그리스 문화와 철학을 심고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불상또한 그리스 인들의 간다라 미술 발전 이후에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 때 이주한 그리스 인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불교 교리가 만들어졌다.


그리스 철학이 불교 교리 만들었다.


불교도들이 그리스 에피쿠로스 학파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글을 씁니다.

<에피쿠로스에서 찾아 본 불교의 모습>


그러나 앞 편 글에서 밝혔듯이, 불교 경전 상당 수가 기원후 1세기 이후부터이며, 1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경전도 한 두권 정도 밖에 안됩니다. 불교 교리가 성립된 게 기원후 4세기 입니다. 간다라 지방에 정착한 그리스 인들의 철학이 불교 교리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불교 경전 안에는 에피쿠로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색, 공 사상은 플라톤의 이원론 사상을 그대로 베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플라톤철학도 불교를 베낀 줄 알지만, 기원후 4세기에나 정립이 되는 불교 교리는, 기원전 6세기에 이미 서류로 발표하고 기록으로 남아있는 플라톤 철학을 1000년 뒤에 베낀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국가>(플라톤) 동굴의 비유와 십우도(十牛圖)의 완성




대승불교 = 그레코 불교



부처님이 주로 활동했던 마가다 지역은 갠지스 평원이다. 하지만 인도의 북부지역은 히말라야의 산악지형이 시작되는 카슈미르 간다라 지역이다. 이 지역은 기원전부터 일찍이 페르시아-그리스 문명과 충돌하면서 인도-그리스왕국이 존재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인도-그리스왕국을 밀어내고 들어선 것은 쿠샨왕조(기원후 30년-375년)이다. 쿠샨왕조는 타지키스탄, 카스피 해, 아프가니스탄, 갠지스 강 상류를 가로지르던 제국으로 월지 민족이 세웠는데, 원래 타림분지의 초원에서 살다가 흉노에게 밀려서 그리스왕국인 박트리아를 물리치고 자리를 잡았으며, 중국, 로마 제국,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 등과 교역을 했다. 
  
흔히 대승불교하면 쿠샨왕조의 카니슈카 대왕을 떠올리는데, 그가 제4차 경전결집을 후원했기 때문이다. 부처님 열반 이후 지금까지 6차 경전결집회의가 공인되고 있는데, 제3차는 아소카 대왕의 후원으로 이뤄졌고, 제4차는 두 곳에서 개최됐는데, 남방 상좌부는 실론에서, 북방은 쿠샨제국에서 개최되었다. 중국으로 전해진 불교는 쿠샨제국에서 개최된 제4차 경전결집에서 채택된 텍스트였다. 실론에서 개최된 결집회의는 빨리어가 그대로 경전어였다면, 쿠샨제국에서 열린 결집회의의 경전어는 빨리어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바뀌게 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전개된 불교는 산스크리트(梵語) 텍스트에서 한역(漢譯)되었는데, 주로 월지출신이나 페르시아 계 승려들이 역경(譯經)에 참여했다. 

위에서 북방 대승불교의 탄생에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전제했는데, 그것은 지리환경적인 요인이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페르시아 문명과의 접촉에 의한 변화를 의미한다. 당시 쿠샨제국은 인도-그리스왕국 플러스 페르시아 문명권을 접수했기에 다언어 다종교사회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쿠샨제국의 초기 공용어는 그리스어였는데, 기원후 127년까지였다. 기원후 127년부터 박트리아어(이란계)가 공용어로 대체되었다. 월지족은 쿠샨제국을 세웠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그리스인과 박트리아인(이란계)이였다. 비공식 종교언어는 간다리어(산스크리트어계), 소그드어(이란계), 이란계방언과 산스크리트어였다. 종교는 불교, 힌두교, 샤머니즘, 조로아스터교, 마니교와 기타 박트리아(이란)와 인도계의 소수 종교들이었다. 종합해서 정리한다면, 쿠샨제국은 다언어 다종교사회로서 국제성을 띤 다문화 국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대승불교는 이런 다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촉발된 개혁성향의 새 불교였던 것이다. 


  1. 2011_AsiaArchaeology_Ⅵ2011중앙아시아불교사원발굴조사성과_06_고고_기타.pdf

쿠샨왕조는 양 문화를 융 합하여 그레코 불교문화를 재창조함으로써 불교사(佛敎史)에 회기적인 분수령을 만든다. 쿠샨왕조는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장악하면서 동 시에 불교문화를 실크로드를 통해서 동아시아로 소통시키는 역할을 하 게 된다. 가장 중요한 대승불교를 탄생시켜 동아시아로 전해준다는 사실 



페르시아의 정치제도는 미래의 마우리아 왕조를 포함한 많은 지방에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간다하라 지역이나 오늘 날의 아프가니스탄 동부 그리고 파키스탄 북서부는 인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그리스 문화의 용광로가 되어 복합된 문화인 그레코 불교를 만들어 냈으며, 이것은 5세기까지 지속되어 대승불교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그레코 불교에 대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밀린다왕문경(Milinda王問經)》또는《미란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이라 했고,《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 흡수,와 습합>의 짬뽕 종교 되겠습니다. 그레코 불교는 대승불교를 의미합니다.





그리스 철학을 그대로 베낀 유마경

유마경에서 유마힐 거사와 문수보살의 이야기는,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크리톤과 나눈 이야기를, 인도 현지화시켜서 다시 재구성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아래 같은 색깔로 칠한 내용이 내용의 동질성을 갖고 있음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유마경은 불교의 맨 처음 경전 수타니파타에 전혀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보다 400년 뒤인, 신약성경이 만들어진 후인, 기원후 1~2세기로 보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인도에 전해진 이후에 그의 철학을 불교에 섞어서 만든, 후대 사람들이 완전히 거짓으로 지어낸 가짜 경전 = 위경입니다.

  1. 유마거사가 방편으로 병들어서 문병오는 사람에게 설법 =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에게 제자들과 친구들이 와서 대화

  2. 부처의 10대 제자들이 유마거사에게 힐난을 자주 들음 = 그리스의 유명 철학자들과 소피스트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자주 비판받음.

  3. 유마 거사의 형식주의 불교 비판 = 그리스 철학자들의 형식주의를 비판한 소크라테스

『유마경』은 재가 거사인 유마힐을 중심인물로 내세워 출가중심주의의 형식적인 부파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대승불교의 진의를 드러내고 있다. 유마거사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대승의 보살도를 성취하여 출가자와 동일한 종교 이상을 실현하며 살고 있었다. 유마거사는 방편으로 병이 들었는데, 문병 오는 사람에게 설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러한 사정을 알고 제자들에게 유마거사의 병문안을 갈 것을 명하였지만, 일찍이 유마거사로부터 힐난을 들은 적이 있는 제자들은 병문안 가는 것을 극구 사양한다. 유마거사는 비록 세속에 있지만, 대승의 가르침을 자각하였기에 10대 제자들과 보살들이 그를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며 평소 권력자·작가·시인 등 아테네의 실력자나 지식인들을 깨부수고 다녔던 소크라테스에게 박힌 미운털의 역습이었다. “우리는 단순히 사는 것을 소중히 여길 게 아니라, 잘 사는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하네.” 감옥에서의 탈출을 권하는 친구 크리톤에게 그는 이렇게 반박했다.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묻는 문수사리에게 유마거사는 “모든 중생의 무명과 삶에 대한 갈애가 생긴지 오래되었듯이 나의 이 병도 생긴지 오래되었습니다. 아득히 먼 과거부터 생사를 거치면서 중생이 병들었기에 나도 따라서 병이 든 것입니다. 그러니 중생이 치유된다면 나도 따라서 치유될 것입니다....”라고 한다. 병의 근본이 나에 대한 집착에 있음을 지적하고 나서 “모든 법의 청정함 그 본성의 영원한 적멸 위의의 영역을 따르면서도 모든 중생이 갖가지 열망의 영역을 따르지 않는 것도 아니니 이를 보살행이라고 합니다” 라고 보살행을 설명한다.

또 앉을 자리를 찾는 사리불에게 “법을 구하는 자들은 불.법.승에 집착하지 않으며,고.집.멸.도를 구하지도 않는다”고 선언한다. 관중생품에서 유마거사는 모든 법은 본질적으로 비어있는 것이며 진실로 나라는 것도 없으며 중생도 없으니 미혹한 분별에 의해서 중생도 보이는 것이며, 본래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공의 도리를 밝히고 있다.

보살이 불법을 성취하는 길에 대해선‘보살이 길 아닌 길을 따를 때 불법을 성취하는 길을 따르는 것이다’ 생사가 곧 열반이며 번뇌가 곧 보리이므로 번뇌에 물들어 있는 중생이 그대로 여래인 라고 말씀하신다.


유마경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불이법문 품에서 유마거사는 보살들에게 상대적 차별를 끊고 절대평등한 불이법문에 드는법을  차례로 들은 다음 문수사리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본다. 문수사리가 “보살이 일체법에 대해 말이 없고, 설함도 없으며,가리키는 일도, 인지하는 일도 없으며 모든 질문과 대답을 떠난는 것이 절대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며 유마힐에게 불이법문의 경지에 드는 것을 말해줄 것을 청하자 유마힐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문수사리는 언어나 문자에 의한 분별이 전혀 없는 것이야 말로 진실로 불이법문에 드는 길이라 감탄한다.


이러한 고집멸도를 없애는 열반 사상이 불교 사상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아타락시아의 심화 및 확대한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스 철학은 그리스 본토에서는 끊어졌지만, 알렉산더를 따라 인도로 넘어와서, 인도에서 불교로 집대성되었던 것입니다. 상대성을 중시한 소피스트 철학과 절대성을 중시한 소크라테스 철학은 불교 안에서 혼재한 상태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론 사상으로 구분되어 정리돼있습니다. 다시 말해 절대성 철학은 플라톤의 이데아 세상에 배정하고, 상대성 철학은 우리들의 현실 세계에 배정해놓아서, 양자의 철학을 균형있게 대립, 조화시켜놓은 게 불교이며, 결국 은 그리스 철학을 그대로 베낀 것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리스 인들이 알렉산더 대왕을 따라 동방으로 넘어와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및 인도 북서부 일대에 나라들을 세우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종교가 불교의 원형이다!


불교의 윤회 사상은 그리스 철학 오르페우스 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르페우스는 인도 불교의 창시자 붓다 탄생 백년 전 사람입니다.

환생의 원조, 그리스의 오르페우스 교


그리스 철학과 종교는, 현재 불교 이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그리스 철학과 종교가 만들어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기원전 6세기 사람이라면, 그리스 종교는 보통 기원전 11세기로 올라갑니다. 붓다보다 500년 앞선 불교의 원본이 그리스 종교입니다.

고대 그리스 종교


동방으로 이주한 그리스 인들이 탄생시킨 불교 불상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