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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 블로그 관리자/www.outerlevi.kr 공개 글

승려 3걸傑 서신 2 - 성철 스님



SC 스님 이야기

 

1983년 늦봄-초여름에 제가 난곡동에 살고 있을 당시에, 예수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제 영혼을 돌 축대가 있는 고즈넉한 산사로 데려가셨습니다. 그 산에는 큰 절이 있었고 수 많은 스님들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 중에 한 스님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공부를 하셨는데, 성경도 읽어보셨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면 나타나보시오! 그분이 붓다의 가르침보다 뛰어나다면 내가 믿으리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붓다 스스로 나보다 더 뛰어난 이가 있다면, 그에게 가서 배우라.” 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SC 스님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장좌불와로 깨달음을 간구하는 과정 중, 새벽에 야훼 하나님께서 그 승려가 한 말에 대해서 응답하시고 만나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혼란이 생겼습니다. 그가 그 말을 한 당시에는 불교만한 가르침이 이 세상에 없을 줄 알았고, 개신교계 사람들은 유치해보여서 자신이 뱉은 말대로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자신을 입증하시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스님은 잠시 당황하다가 그 상황을 살불살조(殺佛殺祖)로 대처하고, 불교의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 좀 더 정진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불교적 깨달음(한 생각)도 얻었기에, 오도송을 펼치게 됩니다. 그분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니 부처님의 가피력을 힘입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 찾아오게 됩니다. 그때마다 많은 절을 시킨 이유는, 그분 스스로 불교 경전과 힌두 경전에 나오는 깨달은 자가 갖는 싯디-자유자재한 신통력-가 자신에게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SC 스님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체투지를 통하여 각기 자신의 본성을 찾든지 부처님을 만나라는 원론적 방편을 사용했습니다. 한편 개신교 성경을 읽었기 때문에 개신교적 사고관을 불교에 접목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붓다와 불경을 의지하라.” 물론 부처님도 유언당시에 같은 말씀을 하시기도 했지만, SC 스님 마음 속에는 성경적 사고관이 자리잡아갔습니다.

 

마침 한 여인이 불치병에 걸려서 성철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스님을 뵙고 절에 살면서 부처님께 삶을 바치면 나을 줄 알고 절에 온 것이며, 자신의 뜻을 스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자신에게 치유할 능력이 없음과 현실적으로 여신도가 비구들이 사는 절에 머물 수 없음을 잘 알고 계셔서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라!”

 

여신도는 선문답으로 알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병은 치유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이 되지 않을 줄 잘 알고 계셨지만, SC 스님이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서는 SC 스님이 자신에게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절실하여 여인의 병을 고쳐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그 여인은 지금도 자기 병이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치유된 줄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사실은 물론 인터넷으로 6년 전 쯤에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SC 스님은 3개의 시로 유명한데, 이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1983년도에 제게 모두 보여주셨습니다.

 

 



 

물 속에서 물을 찾는다. -1987년 부처님 오신날 법어-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 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하지만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당신이 부처인 줄 알 때에 착한 생각, 악한 생각, 미운 마음, 고운 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그리하여 악마와 성인을 다같이 부처로 스승으로 부모로 섬기게 됩니다.여기에서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다 없어지고 이 세계는 본래로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일체의 불행과 불안은 본래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우리가 나아갈 가장 근본적인 길은 거룩한 부처인 당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에 온 세계는 본래 부처로 충만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러운 뻘밭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 피어 있으니 참으로 장관입니다.! 이 얼마나 거룩한 진리입니까?이 진리를 두고 어디에서 따로 진리를 구하겠습니까?이 밖에서 진리를 찾으면 물속에서 물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 인생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선과 악으로 모든 것을 상대할 때 거기에서 지옥이 불타게 됩니다.

 

선악의 대립이 사라지고 선악이 융화상통할 때에 시방세계에 가득히 피어 있는 연꽃을 바라보게 됩니다.

 

연꽃마다 부처요, 극락세계 아님이 없으니 이는 사탄의 거룩한 본 모습을 바로 볼 때입니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동산에 앉아서 무엇을 그다지도 슬퍼하는가?, 나비 춤을 추니 함께 같이 노래하며 춤을 추세.

 

이상의 말씀을 설법하시는 장면을 1983년도에 미리 삼위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대형사찰 마당에 연등이 줄줄이 걸리고, 많은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SC 스님께서 오랜 시간동안 아무 말씀하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했고 어떤 큰 뜻이 있는 것인지, 염화미소, 이심전심의 깊은 뜻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법어 속 사정 해설

 

그 시간동안 벌어진 속 얘기를 쓰겠습니다. 그 법회에서 하나님께서는 SC 스님에게 하나님을 만난 것을 간증하기를 바라셨고 SC 스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SC 스님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기독교보다 불교가 우월하다는 심리가 있었으며, 불교에서는 본디 각 자아가 자유로운 존재인데 하나님이 구속하려는 것이라는 반발감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불교를 배신하는 행위는 자신을 믿고 따라준 사부대중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져서 못하겠다고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네 신은 이런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니, 근육질의 잘생긴 온 몸이 검붉은 거대한 사탄이 나체로 우뚝서서 스님을 3~5M 앞 거리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성철 스님의 눈에는 상반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너무나 힘차고 우람하며 당당한 자태에서, 하늘을 찌르고 세상을 제압하는 엄숙한 권세가 충만했습니다.

 

스님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서두로 운을 뗐습니다.

그 마음속에는 진짜로 눈에 보였던 사단에 대해서 경외심이 있었고, 불교 사상은 기독교와 달리 포용성이 있다는 자부심으로,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께 대드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2연부터는 불교의 교리를 통해서 SC 스님의 발언에 대한 사람들의 의구심을 해소해줘야겠다고 생각하시고 말씀하신 겁니다.

 

4연에서는 지옥같고 추잡한 현실 자체가 연꽃이 피어날 수 있는 뻘밭이니, 이 현실 사바세계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설명할 때에 물고기가 물속에서 뻐금거리며, 자기들끼리 대화하는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물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대체 물을 본 적이 없으니 물이 뭔지 모르겠다.”, “물이 뭐니?”, “글쎄?”, “물이 뭔지 찾으러 가야겠다.”, “조상들의 말로는 우리가 물 속에 있다고 그러네?”

 

오랜 여정 끝에 포식자의 위험 때문에 도망치다가 물 밖에 뛰쳐올랐을 때, 자기가 있던 곳이 물속이었음을 발견하는 장면도 보여주셨습니다. 진흙뻘 속에 가득찬 연꽃들을 보여주시며, 더러운 진흙창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난다는 불교의 관점을 제게 설명하셨습니다. 세상에는 모든 존재가 부처로 보이는 스님의 시각도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SC 스님의 마음속에서 어둡던 고민과 걱정이 불교적 교리로 가뿐하고 상쾌한 생각과 감정으로 전환됨과 불교의 교리가 하나님을 이겼다는 생각도 다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불교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원소를 쪼개면 결국은 모두 똑같은 파장의 흐름의 상태로 돌아감을 알고 있어서 본래는 모두 똑같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원효 스님의 일체유심조를 내세우고, 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는 여자가 생리를 하고 난 생식기와 생리대를 씻고 빤 시냇물을 아래에서 받아먹기도 하였습니다. 보살들이 가르침을 확인하기 위해서 둔갑 기적을 행한 것이라고 불교계에서는 생각 합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아서 농락당한 것이며 바로 이 때문에 세상은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이 내키는 대로 방종과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다 보여주시고 설명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승불교의 선()사상과 힌두의 탄트라를 인용하면서 극대화된 자유주의와 문란한 성, 폭력 문화를 논리적으로 변호하며 더욱 강력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불교계 인사들은 지옥에 빠지고, 다른 사람들이 불교로 인해 지옥에 오는 광경을 늘 보게 되며 그들의 원망을 많이 듣게 된다고 합니다.

너 때문에 내가 지옥에 왔다. 난 몰랐다. 너의 가르침에 내가 속았다.”

 

불교가 왜 폭력 문화와 관계있냐고 묻는다면, 스즈끼 다이세쯔 선사의 2차대전 당시 일본에 끼친 영향과 조주의 고양이, 임제의 갈() 이후의 과격한 깨달음 전수방식을 생각해보시면 압니다. 서구인들은 그 행위를 본받았습니다. 음란은 탄트라와 이를 설명한 오쇼 라즈니쉬 및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했던 마하리쉬를 비롯한 인도 요기들의 책을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물론 불교와 이들은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미 원융회통 사상을 통해서 불교는 사후세계의 심판자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수 없게 됩니다.

 




SC 스님의 열반송

 

생평기광 남녀군 - 일평생 남녀무리를 속여 미치게 했으니,

미천과업 과수미 -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수미산보다 더 크구나!

활염아비 한만단 - 산채로 불의 아비지옥으로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구나!

일륜토홍 괘벽산 - 한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렸구나!

 

이상의 글은 불교에서 이렇게 해석합니다. 붓다께서도 돌아가실때는,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다.” 곧 불립문자의 가르침을 보여주는 것이며, 깨달음의 한 방편이다. 혹자는 불교의 고승들은 이처럼 겸손해서 기독교 목사들처럼 자기 잘났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부덕함을 고백한다고 말한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SC 스님과 제게 보여주신 것을, 1연부터 서술하겠습니다.

1; 알쏭달쏭한 선문답과 세상의 상식을 깨는 말잔치로 사람들이 분별력을 잃고 미쳐 버린다. 불교가 자아해탈과 정해진 몸에 구애받지 않는 윤회설 설파로, 신과 인간 사이에 이간질을 했으며 그로 인해서 서구에 동성애, 자기애, 수간, 가정파괴를 불러들이는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2-3; 스즈끼 다이세쯔, 틱 낫한, 오쇼라즈니쉬, 달라이 라마의 불교 가르침이 서구의 탈기독교를 가속시켰으며, 그로인해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와 율법을 무시하고, 음란, 방종, 폭력, 아집에 빠졌습니다. 세상이 미쳐버리는 데도 오히려 불교계는 대중에 영합하고 반기독교적 자세를 취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가르침과 논리를 제공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4; 그 모습은 서쪽에 해가 지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SC 스님에게 보여주신 것으로, 그 뜻은 이 세상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준 것입니다.

 

 

 

운명 전에 말씀하신 SC 스님의 시

 

석가는 원래 큰 도적이요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서천에 속이고 동토에 기만하였네도적이여 도적이여!

 

저 한없이 어리석은 남녀를 속이고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한마디 말이 끊어지니 일천성의 소리가 사라지고한칼을 휘두르니 만리에 송장이 즐비하다.

 

알든지 모르든지 상신 실명을 면치 못하리니말해보라 이 무슨 도리인가

 

작약 꽃에 보살의 얼굴이 열리고종녀 잎에 야차의 머리가 나타난다.

 

목위의 무쇠간은 무게가 일곱근이요,발밑의 지옥은 괴로움이 끝없도다.

 

석가와 미타는 뜨거운 구리 쇳물을 마시고가섭과 아난은 무쇠를 먹는다.

 

몸을 날려 백옥 난간을 쳐부수고손을 휘둘러 황금 줄을 끊어 버린다.

 

산이 우뚝 우뚝 솟음이여, 물은 느릿느릿 흐르며잣나무 빽빽함이여 바람이 씽씽 분다.

 

사나운 용이 힘차게 나니 푸른 바다가 넓고사자가 고함지르니 조각달이 높이 솟았네.

 

알겠느냐? 1 2 3 4 5 6 7 이여!두견새 우는 곳에 꽃이 어지럽게 흩어졌네.

 

!

 

 

 

운명시 해설

 

이 시 또한 SC 스님이 임종을 맞이하기 직전에 영안이 열려서 보신 것으로, 지옥에 떨어진 부처님과 제자들 및 사부대중에 대한 묘사와 서술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 세상 사람들이 부처님이 열반, 입멸의 세계에 들어가신 줄 알고 안온하였고, 날씨는 마침 봄, 초여름의 날씨처럼 화창하였습니다. 마치 동화 속 배경 같은 이승의 마지막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부처님은 화창하고 평온한 이승을 뒤로하고 어두컴컴한 지옥에 자신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이 한없이 떨어졌습니다. 부처님 본인도 자신의 이론에 따라 좋은 곳에 갈 줄 알았지만, 죽은 뒤 자신의 영혼에 대한 통제력이 없어서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1-2; 이상의 모습을 본 SC 스님은, 불교를 창시한 석가를 큰 도적으로, 그 도를 동쪽으로 전한 달마를 작은 도적으로 묘사하며, 인도와 서역 및 동방의 사람들에게 한 말들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불경이 구원의 관점에 있어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헛된 지식이었음을 SC 스님은 깨달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으니, 우리도 가보자고 하면서 제자들부터 열심히 정진했습니다. 일반 남녀들도 가정을 버리던, 가정에 있던 열심히 수행을 했으나 그 죽음 이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어두컴컴한 곳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지옥에서 석가모니 부처님도 보았고 아무 소용없음을 알았으니, 안타까운 마음만 애탈 뿐입니다. 지옥에서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영적 화면으로 지상에서 자신이 벌인 일의 결과가 낱낱이 보이며, 그것으로 늘 양심의 가책까지 받습니다.

 

3; 당당한 이유는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가 지옥에서도 이어질 줄 알았고, 부처님 스스로가 만물과 작용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마음을 비우고 지키면 자신도 무생물의 대자연처럼 아무 고통이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4; 부처님과 성철 스님 모두 생각하기를, 한 생각이 사라지면, 만 번뇌가 사라진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지옥에 따라 들어온 사부대중들과 제자들이 부처님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습니다.

부처님, 당신이 여기 왜 오셨습니까? 대체 우리는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어인 일로 왔습니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도 여기 왔냐?” “너 때문에 속아서 여기 왔다!”

등등 분노, 경외, 실망 등 각종 마음이 섞인 물음과 화풀이의 말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습니다.

 

제 영혼이 부처님의 마음 속안에 들어갔었는데, 무기력하게 바라만 볼 뿐,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위로의 말을 건네봐야 지옥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음은, 세상과 달리 고통이 지나가는 게 아니고 영원히 이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격언은 이생에서만 진실입니다. 지옥에선 꿈일 뿐입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쉽게 무너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집이 뚱뚱한 마귀가 워낙 사람들이 시끄럽게 구니까, 귀찮았는지 큰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습니다. 시끄럽다니까!”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송장처럼 쓰러져 버렸습니다.

 

5; SC 스님이 위 광경을 보고서, 그간 자신이 닦아 온 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도를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결국 지옥에 오기 때문입니다.

 

6; 불가에서는 보살과 마귀가 본성은 서로 다르지 않은 불성을 지닌 같은 존재로 해석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SC 스님이 본 바는, 세상에서는 보살은 부처의 아래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행하나, 지옥에서는 야차가 보살의 탈을 쓰고 지상에 나가서 중생을 제도하는 척 부처를 뒤에서 조종하는 가면놀이를 하는 실상이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이 저를 인도해서, 지옥에서 그 광경을 직접 봤습니다. 꽃잎 속에 보살이 있고, 그 보살은 온 몸이 들어가는 하나의 탈이며, 그 속에서 야차가 숨어있다가 잎이 무성한 뒷면을 통해서 나왔습니다.

 

7-8; 언급된 부처, 보살, 제자들은 머리칼 모양과 영안을 통해서 누군지 알 수 있었으며, 그들은 오랜 고통으로 몰골이 심히 수척하며 산송장같았습니다. 목에 칼을 차고 마귀가 쇳물을 국자로 퍼서 억지로 입을 벌려 들이붓거나, 쇳덩이를 쑤셔 박아 넣었습니다. 너무 뜨겁고 목구멍에 갑자기 흘러들어가니 비명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SC 스님의 영혼이 지옥의 천장에서 아래를 바라보는데, 컴컴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비명 소리만 들립니다.

 

9; 하나님께서 SC 스님에게 오랫동안 구원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예수님께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SC 스님은 불교 논리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아무리 겸손하고 개방적 태도를 지녔다고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불교계 안에서 일뿐이고, 개신교 성경과 목사들을 깔보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윤회와 열반에 대한 믿음이 강한 나머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깨달음을 방해하는 유혹의 손길로 여겼습니다. 더 나아가 SC스님은 그간 자신을 믿고 따라준 신도들과 제자, 동료들에 대한 의리 때문에 끝까지 예수님께 회개하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백옥 난간은 천국으로 이어지는 계단이며, 황금줄은 천국에서 정수리로 내려오는 황금빛줄기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죽음 전까지도 SC 스님에게 천국으로 올 길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때 SC 스님께서 육은 누워있지만, 영으로 백옥난간을 날아차고 손으로 황금 빛줄기를 흩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그 장면을 보는데, 저는 무척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냈는데, 자기만 천국갈 수 없다고 SC 스님이 말했습니다. 즉 마지막으로 건네는 회개의 기회를 거부함을 보여주는 이상입니다.

 

10-11; SC 스님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임종시 예수님께 용서를 구하고 회개를 하는 것을 거부하자,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는 지옥의 광경을 보여주셨습니다. 날카로운 산이 우뚝 깎아지를 듯 솟아서 떨어지면 몸이 꿰이거나 잘려 나갑니다. 느릿느릿 흐르는 물은 물이 아닙니다. 기억이 오래돼서 부정확하지만 수은 같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빽빽한 잣나무는 가까이에서 보면 모두 날카로운 창, 칼날입니다. 지옥에 빠진 영혼들 사이에서 도산(刀山)지옥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거기서 거센 바람만 씽씽 불었습니다. 하늘에서는 지옥의 왕족인 용이 날아다니고, 땅에는 마귀가 내는 맹수의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SC 스님은 이 모든 광경을, 회개를 결정짓지 못하는 순간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양다리를 걸친 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12;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라고 SC 스님에게 회개를 권하였고, 마지막으로 시간을 카운트해주셨습니다. 스님은 자신이 속였던 사부대중에게 미안한 마음과 의리, 지난 날 하나님께 대든 감정의 관성이 남아서, 입술을 움찔거릴 뿐 차마 말을 못했습니다. 대신 용기를 내서 한다는 말이, 하나님께서 SC 스님에게 하신 말씀을 되풀이 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의미하는 두견새가 어두운 숲에서 우는 소리를 들렸으며, 꽃이 흩어짐같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무산됐습니다.

 

SC 스님은 남 모르는 마음의 고통과 갈등이 있었으며, 이는 화려한 불교의 가르침으로 사는 동안에 잠시 잊혀졌다가 점점 죽음이 다가오면서 다시 부각됐고, 임종시에 두드러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만난 것과 죽음이 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다른 이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점입니다.

 

SC 스님은 살면서 여러 선문답을 말씀하신 것 같고, 불교의 불립문자, 이심전심, 염화시중, 방편으로 이해되어 반어적 표현으로 사부대중은 이해하고 심지어 꿈보다 해몽으로 자기들이 말을 덧붙여서 꾸몄습니다. 그때마다 남 모르게 속으로 안타까워 했습니다. 사람들이 바보같이 속는다. 나는 사실을 말했는데, 내 입으로 직설적으로 말할 수는 없고 답답하다!’

물론 한편으로는 불교를 통해서 깨달으면 되지 않는가하는 한가닥 희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에 대한 환상은 말 그대로 피조물들의 꿈일 뿐이라고 합니다.

 




스님께서 따님에게 하신 유언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이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 시에 찾게 됐다.

필이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이상의 유언은 여러 불자들은, 사실무근이거나 불교적인 반어법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유언조차도 아버지로서의 진심이 담겨있었고, SC 스님은 불교에 구원이 없었음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가족과 생이별을 해서 오랫동안 상처를 주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과 한이 사무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