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 스님의 유언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 드린다.
어리석은 탓으로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 겠다.
번거롭고 부질없고 많은 사람들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라.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갈 것이다.
내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며,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마라.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마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를 베지 마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넓적 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 달라. 그것이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유언 환상을 받은 뒷 배경과 해설
1998년 초여름 쯤 되는 날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서, 저는 DH 선원에서 빌려온 티벳의 성자, 미라래빠의 위인전을 읽고 있었고, 진정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때 제게 환상이 임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흰 망토 옷을 입고 제 앞에 왔습니다. 그리고 미라래빠가 임종시에 하늘로 들려 올려진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던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여기서 원래는 예수님께서 미라래빠에 대해서 가리키면서, 제게 하신 말씀이 있는데,
처음에 글을 쓸 당시에, 제가 직접 세상에 발표하고자, 삭제 했습니다. 찾는대로 올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제가 독점하고자 한 죄값으로, 지금도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본 하드 디스크는 날아갔구요.
공기와 물같은 하나님의 소유를 움켜쥐려는 한 어리석은 인간의 노력으로, 따로 떼어진 예언 조각들이 상당히 많이 있고, 유실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승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아름드리 꽃나무가 마당에 있고, 주변에 향토적인 꽃들과 풀들이 가지런히 정렬된 가운데, 고인돌 마냥 괴어진 넓적한 바위를 보여주셨습니다. 한 덕망있는 승려의 겸손한 죽음은 지식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에게까지 귀감이 되는 장면과 함께. 한가지 궁금한 점은 화투의 뾰족한 꽃의 광의 그림이 보이는데, 거기 그런 철쭉같은 꽃이 심겨져 있나요?
2번은, BJ 스님이 자신이 깨달은 자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겸손했고 깨달은 자가 소유한 기적이 없음을 잘 알았습니다. BJ 스님도 공부만 하는 지식적 학승이 아니라, 본디 선(禪)을 통해 초월적 자아를 추구하는 신비주의적 성향을 존중했습니다. 그분도 마찬가지로 석가모니 시대에 불교 경전에 나온 내용대로, 신통력이 없으면 깨달은 자가 아니라는 경전 기본에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셨던 것입니다. 깨닫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윤회할 것으로 생각하시고, 이 생의 것을 모두 처분하여 남에게 유익이 되는 보시행의 기본을 지키면 될 줄로 생각하시는 장면을 봤습니다.
7번의 경우에는, BJ 스님과 하나님 사이에 대화가 있었습니다. 물론 본인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의 물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 “네가 깨달았는가?”
BJ : “....”
하나님 : “깨달았다면, 무언가 기적이 나타나야 하지 않는가? 붓다도 변화술등의 이적을 행했다고 불경에 씌여 있고 신통력을 논했다.”
BJ : “난 깨달은 게 아니다.”
동시에 BJ 스님의 마음 속에서 불교의 불립문자 사상이 떠올랐습니다. 각종 언변과 논리로 깨달음의 길은 더 복잡해져서, 깨달음에 더 방해되며 심지어 깨달은 척하는 말들은 마귀의 말이며, 많은 말들은 오히려 자아에 집착하게 하며, 덧없는 장애요 부산물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불교적 가르침에 따라서 책을 없애기로 결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점이 개신교와 불교의 차이라고 하셨습니다. 개신교 목사들은 겉으로는 승려보다 못해 보이고 수행도 안하는 것 같지만, 자기의 말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삶과 죽음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받아적은 것이기 때문에, 저서를 남기는 데에 확신이 넘친다고 보여주셨습니다.
마음 속 감정을 보여주셨는데, BJ 스님이 자신의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죽음에서 구원받을 생명을 줄 수 없음을 실감하셨고, 공허한 마음이 가슴, 배를 텅비게 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경험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 마음에서는, 불교적 가르침인 윤회의 원리에 따라 이생에서 선업을 쌓고, 정진하면 죽어서 영적 자유와 힘을 얻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이 땅에 살아있을 때조차도 영적인 힘이 없는데, 죽는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죽으면 더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다음에는 영혼이 식물인간처럼 질질 끌려다니는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이 죽고난 뒤에 가야할 곳을 스스로 정함이 불가능하며, 저절로 타력에 의해서 결정되고 사후세계에서 자신이 보내지는 환경은 순식간에 변화해서 순간이동 하듯이 이미 와있는 광경입니다. 산과 호수가 있는 빼어난 유럽의 절경에 있던지, 나른하고 평온한 초원 언덕에 와 있던지, 눈 덮이고 극심한 추위의 한랭한 지역에 있던지, 하늘 위 천국이든, 땅 속 깊이 용암이 들끓는 지옥이든 말입니다. 모두가 이 땅의 모습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 땅의 비슷한 지역으로 대체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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