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부목사

저는 선지자, 사도적으로 쓰임받는다고 나팔불고 다녀요.

제가 선지자라고 대놓고 나팔불며 떠벌리고 다니는 신학적 이유와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과거 은사자들이 악행으로 이미지가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용어를 남발하며, 문턱 낮추고 저항감을 줄이는데, 노력합니다.


1. 만인제사장 교리

두 말이 필요없이, 저도 선지자, 사도적권능으로 쓰임받음에 아무 하자가 없고, 보는 여러분도 마찬가지 입니다.


2. 요한 복음에서, 믿는 자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한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3. 제 나이가 내년에 만 40입니다.

"남자 나이 40에도 성공 못 하면 두려워할 것 없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후생가외 後生可畏◑ 

▶ 젊은 후배들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 곧 젊은 후배들은 선인(先人→先生)의 가르침을 배워 어떤 훌륭한 인물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가히 두렵다는 말. 

▶ 춘추 시대의 대철학자, 사상가인 성인(聖人) 공자(孔子)는 말했다. 

"'젊은 후배들은 두려워할 만하다[後生可畏].' 

장래에 그들이 지금의 우리를 따르지 못하리라고 어찌 알 수 있겠는가? [焉知來者之不知今也] 

그러나 40세, 50세가 되어도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바 없느니라." 

[주] '후생가외'는 공자가 제자 중 학문과 덕행이 가장 뛰어난 안회 [顔回:자는 자연(子淵), B.C. 521∼490]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함. 

▶ 자기보다 먼저 태어나서 지식과 덕망이 나중에 태어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선생(先生)이고, 자기보다 뒤에 태어난 사람, 즉 후배에 해당하는 사람이 후생(後生)이다. 그런데 이 후생은 장래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히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이 말은 《논어》 〈자한편(子罕篇)〉에 나온다. 

“자왈 후생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부족외야이(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공자가 말했다. 뒤에 태어난 사람이 가히 두렵다. 어찌 오는 사람들이 이제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으랴.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명성이 들리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될 뿐이다.)” 

여기서 ‘외(畏)’란 좋은 의미에서 존경하고 주목할 만한 것을 말한다. 즉, 뒤에 태어난 사람인 후배들에게 무한한 기대를 걸고 한 말이다. 그들의 장래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알 수 없는 기대가 섞인 두려움인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도 더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사오십이 되도록 이름이 나지 않으면 두려워할 것이 못된다고 말함으로써 젊었을 때 학문에 힘쓸 것을 충고하는 것이다. 

공자는 이 말을 통해 젊은이는 항상 학문에 정진해야 하고, 선배되는 사람들은 학문을 하는 태도가 겸손해야 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후생가외라고 한 것은 그의 제자 중 특히 재주와 덕을 갖추고 학문이 뛰어난 안회(顔回)의 훌륭함을 두고 이른 말이다. 

이 말은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후생각고(後生角高)’라는 말과도 뜻이 통한다. 후생각고는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훨씬 나을 때 이르는 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과도 뜻이 통하는 말이다. 

▶ 後 뒤 후. 生 날 생. 可 옳을 가. 畏 두려워할 외. 

▶ [출전] 論語 子罕篇(자한편)  



이미 제 인생을 말아먹었습니다. 더 이상 지켜야할 제 삶의 스펙과 미래도 없습니다. 따라서 제 입신양명을 위해 보신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우리 교회는 전도도 잘 못하므로, 눈치 볼 성도가 없습니다. 더 이상 저를 보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뜯어갈 재산도 거의 없어서, 우리 교회에 아무도 관심을 안가집니다.


20대 초반에 같은 이유로, 제가 입 다물고 꾹 참고 20년을 버텼습니다. 속에서 답답하여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화병이 약간 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 화풀이하는 패륜적 삶을 살았습니다.




4. 저도 슬슬 장가가고 싶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위기의 시대를 말씀과 성령님으로 방비하면, 제 개인 생활시간이 생길 듯 합니다. 분업과 협력은 우리 삶을 희생만으로 이끌지 않고, 지탱하게 합니다.

제가 정치적 불안 및 경제적 빈곤 상황과 불안한 심리상태에 매여, 말도 제대로 못 붙이고 놓친 마음에 들었던 자매들도 수두룩 합니다.

심지어는 있는 자매들조차 만나지 않거나, 만날 약속을 잡더라도, 약속 시간이 30분 이상 늦어지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와서 나름 대로의 작업을 했습니다.



5. 새 술은 새 부대에,


마태복음 9장

16.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2000년대 홍익대학교 재학 시절과 2005년 이후 시온 기도원을 전전하던 때에, 2009년 이후 여의도 순복음 성동 교회에 묻혀 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네 욕심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부으신 은혜와 은사, 능력을 쌓아두지 말거라. 집착하지 말아라!
아들아! 네 그릇을 비워야, 새로 채워줄 수 있느니라! 네게 부은 하나님의 것들을 모두 쏟아내야, 새롭게 하나님께서 네게 권능과 은혜, 은사를 부으실 수 있단다!"

그 때는 거부했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그 뜻이 무엇인지 체감하므로, 서서히 토해냅니다.





간증 = 권능 재생기

간증의 이유와 목적은, 믿음을 나누고 모두 더 풍성하게 재현하기 위함입니다. 당장은 제 자랑이지만, 나중에는 은사와 권능, 체험과 쓰임받음에 있어서, 민주화, 상향평준화가 됨을 제 자신의 삶으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체험하는 모든 이야기는 본래 남의 간증을 열심히 경청하던 내용이, 제 삶에서 반복되는 것입니다. 또한 제가 체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은 간증을, 또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그 권능과 은혜의 체험이 반복재현되는 것을 15년간 보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2004년 아시아 교회에서 토요일 청년 찬양 집회 전에, 뇌 암에 걸렸던 형제로부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손을 얹어 기도하시니, 폭포수처럼 예수님의 피가 그 머리에 쏟아져 들어가서, 완치됐고 뇌 제거 수술을 면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 얘기를 2010년 여의도 순복음 성동교회에서 간질병 환자였던, 윤O현 형제에게 간증했고 매주 혹은 매일 만날 때마다 열심히 기도해줬습니다. 그 형제에게 똑같이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예수님의 보혈을 폭포수처럼 그 머리에 쏟아주셨던 일이 다시 재현됐습니다. 그 이후부터 매일 그를 괴롭히던 간질병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간증을 2012년 강남구청역 큰 믿음 교회에서 그 친구가 했는데, 제 얘기를 듣고, 제가 기도해주던 바로 그 2010년 이후에 예수님을 만났다고 그 입으로 증거했습니다.

저는 남에게 심판과 재앙만을 경고하는 권세만 받은 줄 알았습니다. 심지어 이 권세또한 아시아 교회의 정O연 형제로부터 들은 그 어머니 목사님의 권세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전해 들은 간증 속 권능은 지금까지 간간히 제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윤 형제의 간증을 듣고서, 저 또한 조용기, 김기동 목사님처럼 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신화와 전설로 세뇌된 어린이

제가 젊어서는 이단, 나이들어서는 부패로 논란이 되고 있는 김기동 목사님을 인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에 내내 예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주셨던, 전설적인 키 작은 권능의 종,

마치 축지법을 쓰듯이 순종의 길로 내달리는 청년을, 저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죽어라 쫓아다녔으나 불순종으로 가던 길에 멈춰서던 저의 모습과 대비되는 환상,

천막 교회 아래에서 문둥이에게 식사를 함께 먹자고 권하고, 문둥이의 피 고름이 흐르는 썩어문드러지는 그 머리에서 모자를 벗기고 손을 얹어 기도하는 환상,

산상 부흥집회 동안에 산 정상은 멀쩡한데, 산 중턱 아래에는 홍수가 나서, 마을 주민들은 다가서기 어렵고, 산 정상에서는 부흥 축제가 벌어지는 환상,

그가 집사시절 교회 건축 공사 중에, 돌을 등에 얹고 교회 위에 붙이기 위해서 나무 발판을 밟고 올라가다 넘어진 환상,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며 하루 종일 방언기도 하던 환상,


등등을 죽 보여주셨는데, 마치 중세 기사도 및 고대 켈트와 게르만의 영웅 전설과 그리스 로마, 수메르의 신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말년에 권능의 종들이 돈과 안락한 삶, 권력에 중독되어 타락할 것도 보여주시고, 삼위 하나님께서 번갈아 가며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나 하나님은, 그때가 그립다! 그의 젊은 날을 추억한단다!
아들아! 나는 다시 뛰고 싶다! 아들아! 나는 그와 함께 뛰어다니며 전도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구나!
아들아! 나 하나님은 다시 심장이 뛰고 싶다! 
아들아! 나 하나님은 다시 흥분하고 싶다! 그 심장의 고동소리가 다시 내 가슴에서 재현되길 원한다!

그러나 그 때 함께 했던 내 종들(조용기, 김기동 목사님을 포함한 태만,타락한 권능의 종들을 지적)이 변질됐고, 많은 종들의 가슴이 식어버렸다. 성령을 이단으로 낙인을 찍어버리는 개신교계 때문에 교회에서 능력이 사라져 간다. 무능한 교회와 목사는 짠 맛을 잃은 소금이 돼서 사람들에게 짓밟힌다. 짓밟힌 나의 자녀들은 도망다니고 숨어있었던 나의 제자들처럼 교회 안에서 문을 걸어잠그고 꼭꼭 숨어 있다.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그 누가 나 하나님과 함께 심장 박동이 같이 뛰겠느냐? 누가 다시 나 하나님과 함께 역사를 이뤄가겠느냐?
누가 나 하나님의 마음을 얻겠느냐? 누가 나의 몸이 되어, 나와 함께 다시 뛰겠느냐?

나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라! 당장은 너희가 고난 속에서 약함과 무능함을 체험하며,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겠지만,
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 너희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본단다! 내가 너희에게 마음을 줘도 된다고 인정하고 싶을때까지!

나 하나님이 너희를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초자연적 권능과 기적으로 너희를 들어써서, 나 하나님을 직접 나 하나님이 증거하마!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실행하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좌우와 하늘에 가득 들어찬 천군천사들의 위용 속에서, 보좌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과 제 바로 눈 앞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제 곁을 둘러싼 연기와 같은 성령님께서 아주 멋있고 또 위대하고, 명화같이 끝장나는 그 모습과 위용 속에서, 제 눈을 홀렸습니다. 제 두뇌는 세뇌를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저는 초등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학교 폭력을 당하고 집에 쳐박혀 있을 때일 겁니다. 끝없이 나약하고 어두운 현실과 대비되는 끝없이 강력하고 강렬한 환한 빛 속에서, 잊기 힘든 기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억이 잠재의식 속에서 제 평생을 지배해 왔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평소부터 일반 평범한 대기업에 들어가길 원치 않았습니다. 2002~2004년 홍익대학교에 통학하는 답십리에서 홍대입구로 전철을 타는동안, 5호선에서 2호선으로 지하철을 갈아타는 왕십리 역 구간에서, 늘 같은 음성이 제게 되물었습니다.

"아들아! 너는 네 주변의 이 사람들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며 살다가, 아무 의미없이 죽을 것인가?
남들 다 이루는 가정에 얽매여, MBC TV 한지붕 세가족의 소시민의 갑갑한 삶 속에 갇혀서 네 삶을 영원히 날리겠느냐?
양복과 넥타이, 구두 똑같은 모습으로, 학교다닐 때의 똑같은 교복, 군대에서 똑같은 군복으로, 틀에 박힌 듯이 살겠는가?
애들과 아내를 부양하다가 인생을 날려먹을 것이냐?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질서를 부숴뜨리리라!
이제 앞으로, 너희 사람들이 믿고 있던 학벌과 탄탄한 직장, 자식의 봉양, 배우자가 휴지조각과 신기루로 바뀌리라!
그래도 신학교에 가지 않겠느냐? 그래도 사람들에게 내 뜻을 전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이 글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낚아채길 바라며, 사관이 역사기록을 남기듯, 이 글을 씁니다.




결    론


이 글을 읽는 이마다 크고 신실한 믿음이 생기셔서, 선지자, 사도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독교 세계를 보호하시고 확장하시는 은혜가 임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저는 파릇한 청춘이 아닌, 20년 뒤엔 남의 도움과 나라의 지원이 필요한 노인이 됩니다. 그래서 뒤 세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도우심에 대한 기록을 남깁니다.

수백~수천년 전 약속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니, 믿음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한국을 기독교 나라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쓰시고 보호하시도록,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셔서, 육체적 욕망과 세속적 이윤으로 성경을 변개하는 세력들로부터 한국과 세계 기독교계를  수호하시고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2차 한국전쟁, 제3차 세계대전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제2차 종교개혁도 재발하고, 성령의 대부흥도 전세계 개신교계를 강타할 예정입니다. 

그 여파로 다른 종교계들도 개혁한다고 난리 법석을 떠는 장면을 1983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주 작정하시고, 개신교계를 둘러싼 주변환경-동성애, 다원주의와 뉴에이지, 페미니즘, 공산주의, 일루미나티같은 비밀결사조직 들은 교회들을 압박하고, 대한민국은 북핵과 동북공정, 중국의 화이질서 재건, 일본의 군사대국화 속에서 볼모로 잡혀있어서, 하지 않을 수 없게 설계돼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개신교의 누적된 타락과 성령훼방죄악, 여호와 하나님의 불굴의 열심 때문입니다.